
인간의 굴레에서
AUTHOR : 윌리엄 서머싯 몸
GENRE : 영미소설
PUBLISHER : 민음사
START DATE : 2026-09-29
END DATE : 2026-10-06
RATING : ★ 5.0 / 5.0
REVIEW
누군가가 나에게 인생책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항상 주저 없이 《인간의 굴레에서》라고 말해왔다. 고민도 많고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시기에, 이 책은 "넌 좀 더 흔들려도 괜찮아. 실패를 하더라도 그를 통해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거야"라며 나를 다독여주었다.
주인공 필립은 사제가 되기로 정해진 길을 무작정 따르지 않는다. 회계사 수련을 받다가 못 버티고 나오고, 예술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가지만 재능이 없어 그길도 그만둔다. 결국 의사의 길을 선택하지만 이조차 대단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적당히 맞는 직업을 찾아낸 결과다. 겉보기엔 갈팡질팡하는 것 같지만, 나는 필립이 타인이 정해준 삶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런 면에서 필립은 자기 인생에 대해 굉장히 주체적인 사람이다.
필립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잃고, 곧 어머니마저 잃는다. 사랑 없는 백부 밑에서 자라며 심지어 신체적 장애라는 굴레까지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굴레가 있었기에 그는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었다. "난 왜 이럴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고민이 스스로를 더 똑바로 바라보게 만든 것이다. 그 덕분에 그는 여러 경험을 마다하지 않았고, 마침내 자신만의 인생의 진리를 깨달으며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는다.
작중 시인 크론쇼가 던진 '페르시아 양탄자' 비유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인생은 한 장의 양탄자다. 삶의 과정은 양탄자의 무늬를 짜는 일이고, 삶의 굴레들은 양탄자를 만드는 재료인 셈이다. 아름다운 무늬를 짜면 기쁠 것이다. 그러려면 여러 재료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실패, 불행, 고통, 행복, 기쁨이라는 다양한 색상의 실과 다채로운 경험들이 어우러져 화려한 무늬를 만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필립은 성찰의 끝에서 꼭 화려하게 짜인 것만 아름다운 게 아님을 깨닫는다. 동양화가 여백의 미를 지니듯, 비어 있고 단순한 무늬 역시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남들 눈에 그저 화려하게 보이는 양탄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내게 주어진 삶의 재료들로 나만의 양탄자를 얼마나 완성도 있게 짜 나갈 것인가이다.
책을 읽으며 정말 큰 위안을 받았다. 방황했던 시간들, 힘들게 견뎌냈던 실패와 고통의 순간들이 떠오르며 "내 양탄자에도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지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래 평범한 것을 싫어하니, 인생의 마지막 자락에서 내 양탄자를 내려다보며 스스로 감탄하게 되지 않을까.
분명 앞으로도 나를 기다리는 수많은 시련과 고난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더 다채로워질 내 양탄자를 생각하면 도리어 위로가 된다.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평탄하게 흘러간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도 없다. 양탄자가 곧 인생이라면, 어떤 모양으로 짜여 있든 그 자체로 이미 완결된 하나의 작품일테니까.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느낀다. 내 인생은 그 자체로 이미 아름다운 것이다. 내가 겪는 모든 일은 양탄자에 그저 하나의 무늬로 나타날 뿐이다. 왜 나에게만 이런 불행이 찾아왔을까 억울해할 필요도 없고,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다. 모든 일은 그저 인생이라는 양탄자의 무늬를 짜 나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인 것이다.
IMPRESSIVE
"하지만 세상에는 타인들도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난 나 자신만을 위해 말하네. 타인은 내 행위를 제약하는 존재들로서만 인식하지. 그야 세상은 그 하나하나의 타인을 중심으로 하여 돌기도 하지. 누구에게나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야. 타인에 대한 나의 권리는 내 힘이 미치는 범위에 국한되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능력이 미치는 데까지일 수밖에 없네."
"제가 보기엔 그건 만사를 아주 이기적으로 보는 방식입니다." 하고 필립이 말했다.
"아니, 그럼, 자넨 인간이 이기적이 아닌 동기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건 불가능해. 자네도 나이가 들면 알게 될 거야. 세상을 살 만한 장소로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도 우선 필요한 일은 인간의 불가피한 이기성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자넨 타인에게 이기적이 아니기를 요구하는데 그건 자네의 욕망을 위해 타인더러 자신의 욕망을 희생하라고 하는 모순된 주장이야. 타인이 왜 그래야 하나. 모든 개인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자신을 위한다는 사실을 자네가 받아들여야 자넨 다른 사람들에게 덜 요구할 수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덜 실망할 거고, 다른 사람들을 더 자비롭게 바라볼 수 있어. 사람은 인생에서 단 한 가지를 추구하지. 그건 자기 자신의 쾌락이야."
"아녜요. 그렇지 않아요." 필립은 소리쳤다.
크론쇼는 낄낄 웃었다.
"놀란 망아지같이 왜 그러나. 자네 기독교가 싫어하는 말을 내가 사용해서? 자넨 가치에 등급을 두고 있어. 쾌락을 맨 아래 두고, 의무라든가, 자비, 진실 같은 말을 할 때는 짜릿한 자기 만족까지 느끼지. 자넨 쾌락을 감각에 관계된다고만 생각할 거야. 하지만 자네의 도덕을 만들어낸 그 비참한 노예들은 자기들이 누리기 힘든 만족은 죄다 경멸했지. 내가 쾌락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말을 사용했다면 자넨 놀라지 않았을 거야. 그 말은 덜 충격적이니까. 그리고 자네 마음은 에피큐로스의 돼지우리에서 그의 정원으로 이동하게 되니까. 하지만 난 쾌락이란 말을 사용하겠네. 왜냐하면 바로 그게 사람의 목표거든.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는지도 모르겠어. 자네가 말하는 그 착한 일들을 실천하는 이유도, 알고 보면 쾌락 때문이야.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이롭기 때문이지. 그것이 남들에게도 이로우면 선한 일로 여겨지는 거야. 은혜를 베푸는 데 쾌락을 느끼는 사람은 자비를 베풀지. 사회에 봉사하는 데 쾌락을 느끼는 사람은 공중정신을 가지게 되고. 하지만 자네가 거지에게 동냥을 하면 그건 자네 자신의 쾌락을 위한 거야. 내가 위스키 소다를 또 한 잔 마시는 게 내 자신의 쾌락을 위한 것이나 같아. 난 자네보다는 솔직한 편이랄 내 자신의 쾌락을 위해 나 자신을 칭찬하거나 자네의 감탄을 요구하지 않네."
"하지만 하고 싶은 일보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없네. 자네 질문 방식이 틀렸어. 자네가 말하려는 건, 당장의 쾌락보다 당장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겠지. 질문 방식도 그렇지만 문제 제기 자체도 어리석네. 사람들이 당장의 쾌락보다 당장의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건 분명해. 하지만 그건 미래의 더 큰 쾌락을 위해서이지. 때로 쾌락은 환영과 같아. 하지만 계산착오가 있다고 해서 법칙을 부정할 수야 없지 않은가."
이건 정말 재능의 영역이다. 다른 사람의 평가와 상관없이 자기가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어서 그리는 그릴 수 밖에 없게 되는 것. 이게 재능이 아니면 무엇일까? 다 적진 않았지만 클러튼의 말처럼 누군가가 그림을 산다고 해도 그 그림은 방에 걸려 고작 몇 초 슬쩍 보는 정도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흔들릴 정도라면 결국은 이 길을 감당할 수 없게 되지 않겠는가? 그림을 그려 돈을 벌겠다는 것과는 다르게 다른 사람의 좋은 평가를 듣고 싶은 거라면 이 길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클러튼의 말을 빌려) 비평이란 객관적인 판단인데, 객관이란 화가와 상관없는 일이기에. 내가 내 그림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만 매달린다면 사실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한 그를 진정한 예술가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독자란 마치 아직 열리지 않은 꽃봉오리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읽거나 행한다고 해도 대부분은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해요. 다만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들은 꽃잎처럼 열리지요. 하나씩 하나씩 말예요. 그러다 마침내 우리는 활짝 핀 꽃을 보게 되는 겁니다."
"사랑보다는 돈이 중요하지 않겠어요?" 필립이 대꾸했다.
이제 책임이라는 마지막 짐까지도 벗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완전히 자유를 누리게 되는 셈이었다. 자기 존재의 무의미함이 오히려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제까지 자기를 박해한다고만 생각했던 잔혹한 운명과 갑자기 대등해진 느낌이 들었다. 인생이 무의미하다면, 세상도 잔혹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립은 행복했다.
관념적 아름다움을 보는 관찰자인 자신과 생생하게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을 대비시켜 아이들처럼 삶을 생생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그저 멀리서 삶을 구경하기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모습이 드러나있다. 필립의 외로움과 열등감이 드러난 장면이다.